천룡사지를 다녀와서..(8)

(서둘러 글을 마치며)

여기쯤에서 나는 역사와 환상에 관한 기술을 멈추려 한다.
그것은 고통과 혼란에 관한 것이고, 그것은 곰씹으면 씹을수록 더욱 나를 고통과 혼란 속으로 몰고 가는 것인 탓으로,
이 정도에서 나는 그 가을을 잊고, 그 대나무숲을 잊으려 한다.

이 이야기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에서 비롯되었음을 마지막으로 부연해 두고자 한다.
틈수골 초입의 연못과 황소 두마리, 와룡암 입구의 둥근 돌
'이 우주를 담는 그릇이 되라'
는 글귀, 함석지붕 절에서의 지장보살 읊조림 天龍寺址의 삼층석탑, 용두암, 고위산, 고위산의 돌들, 윤경렬 선생의 '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중 天女, 龍女를 기리는 애비가 天龍寺를 지었다고 하는 설명,
지친 부산길, 돌아와 누워 꾼 짧은 꿈,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된 꿈과 天龍寺址에서의 기억에 대한 몽상, 뫼비우스의 띠처럼 진정한 시간은 앞, 뒤가 없어 진실로 내가 그곳에서 그 느낌을 받았는지, 그 느낌이 있어 그곳에 갔는지 혼돈에 빠지게 된 망상 이런 것들이 이 글을 쓰게 했다.

그런 탓으로 (물론 다 알고 있겠지만)
이 글은 몇 가지 진실과 많은 허구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 허구는 몇 가지 진실들을 일관되게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해명해 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므로, 오히려 진실을 진실 되게 하고자 환상의 눈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 줄 알고 있는 터이므로 우리가 꿈꾸고 있는 것에 많은 진실이 있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한 믿음에서 '이어쓰는 이야기 남산'을 썼다.
꿈꾸는 것에서 우리가 지나쳐 버린 진실의 편린을 찾기 위하여, 요사이 며칠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 탐닉했다.

밤새 '개미'를 읽고, 짧게 잠들면서 '개미'를 꿈꾸고 다시 일어나 '개미'를 읽은 이틀이었다. 그런 탓으로 '이어쓰는 이야기 남산'으로 향한 몽상이 단절된 것도 서둘러 이 글을 끝내게 한 이유가 되었다. '개미' 꿈에 새벽녁에 꿈에서 깨어나 뒷산을 올랐다.

어둠만이 다가올 아침을 예고하는 새벽길을 타고 산을 올랐다.
다가올 아침해는 다시 일주일 동안 이리저리 사정없이 나를 혼란 가운데로 내몰겠지만, 새벽 어둠 가운데서, 숨가쁘게 멀리 여행하며 그곳의 풍물에 놀라며 즐거워하는 나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어쓰는 이야기 남산' 역시 그런 마음에서 글을 이어갔다.
마음 속 멀리 깊은 곳으로 여행하며 그곳의 사연들에 놀라며, 슬퍼하면서 또 즐거워하는 나를 적어 본 것이다.

여기까지 나와 함께 天龍寺址의 역사와 환상 여행을 즐긴 친구들에게 신비와 환상으로 가득한 자신의 우주를 더불어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 사람에게는 천개의 머리, 천개의 눈이 있고,
세상 구석구석을 누비는 천개의 다리가 있다.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현세를 벗어난다.
사람은 이 우주 자체이며, 과거이고 미래이다.
사람은 멸하지 않는 세계의 주인이다.
그는 육신의 양식 없이도 마음의 눈만으로도
우주를 여행하며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리그 베다'중에서-

천룡사지를 다녀와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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